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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모든것이 여자와 통한다

내친 걸음 2010. 4. 8. 02:56

" 야한 여자, 착한 여자" - 봉준호의 살 맛나는 부동산에서

 

얼마전 후배 K가 찾아왔다.

바빠서 정신이 없지만, 술이라도 한 잔 사주고 싶었다. 순대 국밥집에 가서 순대를 한 접시 시키고 소주 2병과 맥주 1병을 시켰다. 술을 마시다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를 했다.

“결혼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네요. 이제 마누라가 지겹습니다.”
“네 와이프 굉장히 착하잖아.”
“착하죠... 그런데 이제는 좀 야한 여자하고 살아보고 싶습니다. 먼저 요구도 할 줄 알고, 화장도 하고, 컬러풀한 미니스커트도 입고, 무늬 스타킹도 신고...”
“미친 놈”

집에 들어와 창 밖을 보면서 K와 K의 와이프를 떠올렸다. 거실 밖에 창으로 한강이 보이고 멀리 남산 타워의 불빛이 보였다.

강이 보이는 집

강이 보이는 아파트는 “야한 여자”와 같다. 첫 눈에 확 들어온다. 나는 강이 보이는 아파트에 많이 살아봤다. 손님들을 초대하면 손님들은 하나같이 “와!”하고 탄성을 지른다.

넓게 펼쳐진 한강... 한강 다리에 켜진 네온과 조명들, 강 위를 떠다니는 유람선... 강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아파트 잘 샀다는 생각이 든다. 팔 때도 강이 보이는 아파트는 금방 팔린다. 강이 보이는 것만으로 시세에 몇 억이 플러스되기도 한다.

그러면, 강 조망 아파트의 그 감동적이고 멋진 광경이 얼마나 지속될까? 매일 집안에서 살림을 하는 가정주부라면 한 3개월쯤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 다음 부터는 그 강이 무감각하게 느껴지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우울하게 느껴진다. 흐르는 물처럼 인생이 덧없고, 일상에 슬픈 일이 생기면 강물로 뛰어들고 싶어진다.

우울증 증상이 있는 사람에게는 강은 푸르고 짙고 무서운 공포의 대상이다. 늘 드넓게만 펼쳐져 있는 강... 출렁거리는 물결, 지면에 접하지 않고, 높게 올라서 쳐다보아야 하는 고층아파트에서의 강은 더욱 그렇다. 고층아파트에 붙어 있는 강은 강의 중간부터 볼 수 밖에 없다. 항상 삶은 물위에 떠 있는 기분이다. 정상적인 사람들도 중년이 되면 호르몬 감소가 오고, 시야로부터 느끼는 강의 모습은 불안증에서 강박증으로, 그리고 우울증으로 전이하기도 한다.

북향으로 내다보이는 강은 더욱 안 좋다. 북쪽에서 들어오는 햇살은 남향의 햇볕과는 달리 힘이 있지 못하다. 우울하고 어두운 햇살이다. 따라서, 강남에서 한강을 바라보는 중년의 가정 주부들에게서 우울증으로 인한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우리나라에서 강은 고소득층의 소유물이다. 그리고, 높은 아파트 가격의 대명사다. 동부 이촌동이나 압구정동의 강변아파트들은 한강을 코앞에서 들여다본다.

홍콩은 그렇지 않다. “River View”나 “Ocean View”의 아파트보다 “Mountain View”의 아파트 가격이 훨씬 비싸다. 우리나라보다는 한 단계 진보적인 조망권의 가치가 매겨져 있는 듯 하다.

산이 보이는 집

산이 보이는 아파트는 “착한 여자”와 같다. 항상 따뜻하고 다사롭다. 사계절마다 변하는 형형색색의 산은 사람에게 활력을 주고 살아있음을 실감나게 해 준다. 봄마다 산에서 피어나는 녹색의 새 잎들은 내가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감동의 산물이다.

그러나, 산은 언제나 녹색이거나 갈색이다. 야한 여자처럼 빨갛거나 검거나 진한 색이 아니다. 늘 그저 그런 편안한 상대일 뿐이다. Exciting하고 가슴 떨리는 그런 삶을 경험하고 싶다면 강이 보이거나 바다가 보이는 집으로 가야 한다. 산은 그저 어질기만 하다. 인자요산 (仁者樂山)이라는 말이 딱 들어 맞는다. 도심의 산들은 더욱 그렇다. 나즈막한 중층 언덕배기의 산들만이 도심을 감싸고 있다. 군데군데 경사도가 높아서 토목 처리가 힘든 산들만이 도심 곳곳에 남아 있다.

도시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소유가 산이었다. 돈 없고, 힘없어 밀려 올라간 산. 집을 지을 수 있는 꼭대기까지 지어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재개발 구역의 산동네… 남산과 관악산, 북한산 주변의 산기슭이 영세민들을 위한 삶의 터전이다. 이제는 그러한 동네도 거의 다 재개발 되었다. 구릉지에 엄청난 콘크리트 덩어리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고, 그 뒤로 조금씩 깎아지는 듯한 바위산들이 남아 있을 뿐이다.

정말 Luxury한 산들도 있다. 서초동 트라움하우스를 둘러싼 서리풀공원 주변의 방배동 뒷산은 가진 자들이 소유한 동산이다. 도곡동의 매봉산 주거 단지도 가진 자들이 만들어 낸 최고급 주택지이다. 산 속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서 들여 보면 다람쥐와 꿩이 걸어 다닌다.

강이 보이고 산이 보이는 집

그렇다면, 강이 보이고 산이 보이는 집은 없을까? 멀리 강이 보이고, 산이 보이는 집들은 있을지 몰라도, 지척에 강이 보이고 산이 보이는 아파트는 거의 없다. 한남동 재벌들의 조망권 분쟁처럼 산 중턱에 위치해서, 멀리 강을 내다보는 단독 주택들이 있을 뿐이다. 그만큼 대도시에서는 배산임수형의 큰 땅이 나오기 힘든 것이다. 사통팔달에 위치해서 강이 보이고 산에 붙어있는 남향의 집은 야하면서 착한 여자를 만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이외에 고층 아파트는 강한 남자이고, 낮은 층 아파트는 착한 남자다.

당신은 어떤 상대를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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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aroma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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