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6월5일)은 7시 모닝콜에 짐들을 모두싸서 북경으로 이동할 준비를 해야하므로 8시 30분에
黃龍洞窟을 향했다. 가는 길은 이제와는 달리 평지를 10여분 간후 입구에서 10분정도 걸어서 들어가는데 공사중이라 입구의 화려함이 보이지 않았으며, 동굴입구에서 두개의 문이 우리를 고민하게 하였다.
하나는 "행복의 문"이요, 다른 하나는 "건강의 문"인데 우리는 고민끝에 죽어도 행복이 우선임을 확인하고 "행복의 문"으로 들어 갔는데 알고 보니 그게 그것이였다, 그래서 나올때는 "건강의 문"으로 나올것 을 다짐하고 안으로 들어 갔으나 우리나라의 동굴과 달리 음습하고 축축한 "석순, 종유석" 등이 젖어 있지 않고 또 우리 손 가까이 있지도 않으며 멀리 한군데 모아 놓았다. 즉 우리동굴처럼 석회암이 풍부하지 않으나 다만 규모가 워낙 크다는 것이며 또 호수까지 있어 배를 타고 들어 가는 것이 특색이 있었다.
동굴구경후 실크전시관으로 갔는데 누에고치 하나짜리는 실을 뽑아서 원단을 만들고, 누에고치
두개짜리는 그동안에는 기계로 빼지를 못하고 손으로 일일이 분리하여 실을 뽑으므로 별로 귀중하게 취급하지 않았는데 이제 새로운 용도개발에 의해 두개짜리누에고치를 물에서 젖힌후 타원형의 새틀에 늘리고, 다시 하나더 합친후 이것을 4명의 사람이 늘리니 1.5자 정도의 거미줄 모양이 만들어 지고,
이것을 10개 20개 모아서 이불솜 대신에 사용한다는 것으로 가볍고 따뜻하고 매끈하여 실용성이 있어 보였으며 가격 또한 저렴했다.
점심을 중국식한식으로 처리한 후 장가계풍경구에 있는 黃石寨로 갔으며 3개의 케이블카를 한테
묶여져서 입석으로 서서 풍경을 보면서 올라가는데 이제까지 타고 온것중 제일 가파르게 움직이므로 짜릿한 느낌으로는 최고였다.
< 급경사로 올라가므로 짜릿한 속도감과 케이블탑과 케이블바퀴가 슬쩍 넘어갈때의 두려움 . . .>
해발 1100m 정도의 높이이지만 張良이 유방에 합류하기전 여기에서 黃石老翁한테서 제나라 강태공이 남긴 太公兵法을 전수받았다는 곳으로 유명하며, 오른손 다섯 손가락을 위로 치겨세우고 충성을 다짐하는 듯한 모습의 奇岩石, 五指峰과 그 주변의 그림같은 정경들은 원가계와 천자산을 합처 놓은 듯한 느낌이였다.
<황석채케이블카 정상에서 잠시 瞑想에 젖어 본다>
<황석채 정상에서 아래를 보고는 황홀경에 도취된 듯 . . . >
<다섯 손가락을 위로 치겨세워 충성을 다짐하듯 . . . 五指峰>
<五指峰을 바라보는 난간에서 행복감에 젖은 한쌍의 남여 >
내려갈때도 올라올때와 같이 케이블카를 타고서 온후 長家界森林浴場답게 金鞭溪谷은
시원한 바람(風), 걷기에 좋은 돌바닥(石), 기이한 산봉우리(峰), 수려한 소나무(松),
빼어나게 그윽한 계곡(幽谷)을 보면서 맨발로 걸어보고 싶은 곳으로 등소평시절 국가주석 李鵬이
쓴 싯귀가 눈에 띈다.
<국가주석 李鵬이 쓴 것으로 금편계곡 洗足場所에 있었음>
<소달구지 끌고간 농부처럼 모두 신발을 벗었다, 신비한 심산유곡에서 정겨운 표정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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