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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琉球諸島속의 오키나와 쎄째와 네째날

일본은 표준시계 체제에서 시간상 한국과는 전혀 다른나라라고 느끼지 못하는 표준시가 동일하다.우리나라 보다 위도상 더 남쪽에서 부터 더 북쪽으로 넓게 퍼져 있으므로 사계절상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넓다.그리고 비행기로 거의 2-3시간이면 도달 할수 있어 시간의 제약도 적게 받는다.다시말하면 집안팍을 드나들듯 간소하게 갔다 올수 있는 거리인데, 20세기 초반 일본의 제국주의화에 의한 민족의 지배체제에서 국민적 시각이 그리 편치 못하니 노골적으로 좋다는 생각을 설파할 수가 없다. 하지만 어쩌라 !, 두나라는 국익을 우선으로 치열한 기싸움을 벌릴지라도 국민은 국민적시각과 감각으로 동남아에서 서로 주고 받는 산업적 기술교류와 민족적 이질감을 서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

일본 琉球諸島속의 오키나와 둘째날 -2

5- 아메리칸 빌리지 - 미국서부해안의 분위기를 느낄수 있는 풍경과 미국인들의 생활물품들이 있는 상점이 좌우 블럭으로 구성되어 있음.                                      6- 슈리성 - 최근 거의 60-70% 정도가 복원 된 류큐왕국의 궁전이 있는 성으로 들어 가는데 6개의 성문을 거치면 류큐왕국 政殿이 나오며 여기서 나가는 문 1개가 더 있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으로 모든 주차장이 지하로 이어져서 2층인 지상으로 나와야 관람을 할수가 있으며 모든 궁전을 붉은옻칠기로 단장을 하고 있었다.                                      7- 둘째날 국제거리 - 첫날 간 국제거리를 지나 재래시장인 중앙시장을 둘러 보고 철판구이집에서 저녁식사를 마쳤다..

일본 琉球諸島속의 오키나와 둘째날 -1

2002년 12월경 대통령선거에서 제일 큰 이슈는 반미운동 이였다.의정부에서 군사작전활동에서 여고생의 사망이 불을 지핀 것으로 그 이후 한미연합작전권을 신속히 이양하자는 데 합의는 했으나, 미군의 화력과 동일한 무기체제정비문제와 유사시 미국본토와 동일한 전시기준을 망라하려면 모든 군비확장예산으로 충당하여야 하는 난제가 산재하여 차츰 차츰 선거이후 반미퇴조가 힘을 받고 있는데, 일본 오키나와에서도 미국령으로 되어 있던 것을 영토반환하여 1972년 일본령으로 받았지만 군사협정을 약간 변경하여 민간인의 문제에 대한 오키나와자치정부의 행정및 사법권을 동등수준으로 높이는 수준으로 계속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니, 동북아시아가 러시아,중국,북한으로 사회주의화 되고 있는 현실에서 미국의군사력에 의존 할 수 밖에 없는 현..

일본 琉球諸島속의 오키나와 첫째날

류큐 제도[琉球諸島]에서 가장 큰 오키나와 섬(沖繩:충승)은 길이 112㎞, 너비 11㎞, 넓이 1,199㎢이다. 해안에는 산호초가 발달했고 감청색 바다와 흰 모래밭이 특징이다. 메이지 시대[明治時代 : 1868~1912] 초기 현이 되기 전까지는 일본과 중국의 영향을 받는 반(半)독립적인 왕국이였으며,주요경제활동으로는 다랑어잡이·목축업·제당업 및 파인애플 통조림제조업이 있고, 고구마·쌀·콩 등도 재배하며 직물·사케(일본 청주)·칠기를 생산하며, 앞바다에서는 원유를 생산하기도 하며, 현청 소재지는 나하[那覇]이다. 오키나와 섬은 태평양전쟁 때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 중 하나로서, 1945년 4월 미군이 오키나와에 대한 육군·해군·공군 합동 상륙작전을 감행했고, 일본군은 이에 대해 강력한 방어전을 ..